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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국인이 차를 마시는 이유는? 〈2〉
작성자 다도방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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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3-08-17 2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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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비스 사실은] 영국인이 차를 마시는 이유는? 〈2〉
입력: 2006년 12월 18일 21:27:51

비싼 가격과 커피에 밀려 힘을 못 쓰는 차. 과연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애들이 말야…마케팅을 몰라요. 마케팅을, 네들 책 팔 때 베스트셀러 만드는 법 알아?”

“어떻게 만드는데요? 사재기해서요?”

“베스트셀러는 마, 제목부터가 달라! 교과서 세 글자만 박아 넣어주면 아주 난리가 나지, 교과서에 나오는 곤충이라던가,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라던가, 하여튼 교과서만 붙여주면 돼.”

“…그거랑 차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왜 없어? 사람 먹는 거 팔리게 하는 건 더 쉬워.”

“어떻게요?”

“몸에 좋다고 하면 돼.”

“!”

이 간단한 진리…몸에 좋다면, 아무리 비싸도, 아무리 맛이 없어도 먹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가 아니던가? 그렇다고 차가 몸에 안 좋은 것도 아니잖은가? 실제로 의학적인 효능을 가지고 있긴 했다.(차의 천연 항 박테리아 특성은 수인성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되었고, 카페인 성분은 정신을 예민하게 만들어 주었다)

“차를 마십시오! 차는 만병통치약입니다! 차를 마시는 사람은 모든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고, 무병장수 할 수 있습니다!”

1641년 네덜란드의 의사 니콜라스 딕스는 ‘차=만병통치약’이란 공식을 선언하며, 차 마시기를 독려했다. 이런 주장은 딕스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딕스의 주장을 넘겨받아 ‘차=밥’이라는 공식을 내놓은 의사도 등장하게 된다. 같은 네덜란드 의사 출신인 코르넬리우스 본테쾨가 바로 그였다.

“차는 말야. 이건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니까! 차를 먹으면 인간은 병에도 안 걸리고, 수명대로 그대로 살아갈 수 있어.”

“얼마나 마셔야 병에 안 걸립니까?”

“굿 쾌스천! 일단은…그래, 하루에 열 컵씩 마시는 거야. 그리고 차츰 양을 늘려가 차는 좋은 음료수라 마시면 마실수록 좋은 거야. 그러니까…몸이 아픈 사람은 하루에 한 50잔씩 마셔. 그럼 병이 낫을 거야. 그리고 최종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하루에 200잔씩 마신다면, 인류는 더 이상 병마와 싸우지 않아도 될 거야.”

황당한 주장이다. 차가 아무리 좋아도 하루에 200잔이라니, 본테쾨는 이런 주장 덕분에 네덜란드 동인도 주식회사로부터 차 판매를 신장시켰다는 이유로 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차의 판매는 미미했다.

“차는…음료수가 아니라 의약품으로 팔아야겠어.”

“하긴…가격도 그렇고…그렇게 가야겠죠?”

이제 전 유럽은 차를 음료수가 아닌 의약품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때쯤 영국의 차 수입회사에서는 차에다가 우유를 타서 마시는 방법을 개발해 일반 대중에게 홍보하기 시작했는데,

“차에다가 우유를 타서 마십시오! 그럼 폐병을 막을 수 있습니다!”

“장기도 튼튼해 져요!”

“차를 마시면 건강해 집니다!”

이런 식의 홍보를 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영국식 밀크티가 실상은 의약품으로 개발되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이렇게 차를 팔기 위해 모든 홍보수단을 다 동원해 차의 효능을 알렸지만, 역시 비싼 가격과 커피라는 강력한 라이벌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이제 차는 네덜란드에서도, 프랑스에서도(잠시 환영을 받긴 했으나 곧 커피에게 그 자리를 빼앗겼다) 그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커피가 있는데 무슨 차야?”

“요즘도 차 마시는 사람 있어?”

17세기는 차의 시대가 아니고, 커피의 시대였다. 차는 그렇게 쓸쓸히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18세기가 되면서 차는 새로운 탈출구를 찾게 된다. 바로 영국이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차 밖에 없다!”

“야, 차 수입 좀 늘리면 안 되겠냐?”

17세기까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차가 영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이다. 17세기가 끝나가던 1699년에 영국에 수입 되었던 차의 양은 겨우 6톤이었다. 그러나 18세기 말 영국의 연간 차 수입량은 1만 1천 톤에 육박하게 된다. 거의 2,000배에 달하는 성장이었다. 가격도 덩달아 뛰어 올랐다. 수입량이 증가함에 따라 파운드당 차 값도 20배 가까이 뛰어 오르게 된다.

과연 영국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국이 차에 열광했던 이유는 바로 한명의 발명가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리처드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였다. 가난한 집안의 7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아크라이트는 1769년 무명방직기에 관한 특허를 내더니 1771년 친구와 함께 더비셔 주의 크롬포드에 대형 건물을 세우게 된다. 산업 혁명의 시작이었다.

“이제 기술자는 필요 없어! 그냥 사람만 있으면 돼! 이제 직물을 대량생산 할 수 있어!”

물레방아의 힘으로 실을 잣는 기계인 아크라이트의 방직기는 직물 생산에 일대 파란을 가져왔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실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다축 정방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몇몇 노련한 기술자들이 아니면 생산 자체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기계를 돌리고, 실을 뽑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과연 산업혁명은 영국의 차 소비에 어떤 영향을 끼쳤던 것일까? 초특급 대하 울트라 히스토리 ‘영국인이 차를 마시는 이유는?’ 다음회로 이어지는데…커밍 쑨!
출처 :http://news.sportskhan.net/?cat=view&art_id=200612182127513&sec_id=56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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